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2020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 (문단 편집) == 원인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관계)] || [youtube(UMYUFsg_nt4)] || [youtube(zzfarPjWdGE)] || || [[1994년]]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의 일자별 경과 ||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관계 전반에 대해 다룬 영상 || [[아제르바이잔]]의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은 비록 아제르바이잔 소속이지만 실제로는 아르메니아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소련]] 치하 [[아제르바이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자치주(autonomous oblast)였다. 당시에는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양국 모두 [[소련]]의 구성 공화국이었다. 따라서 두 국가의 경계선은 행정적 경계선에 불과하였기에, 통행도 비교적 자유로웠고 [[모스크바]] 중앙정부에 의한 중재가 가능했었다. 이후 [[소련 해체]] 시기에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은 나고르노카라바흐 공화국(아르차흐 공화국)이라는 [[미승인국]]으로 독립하여 사실상 아르메니아의 위성국이 되었다. [[아르차흐 공화국]] 정부와 군대는 사실상 아르메니아 정부, 군대의 하부 조직이다. 아르메니아 정부 요인을 하다가 아르차흐 공화국의 대통령이 되기도 하고, 아르메니아군 중 20%는 아르차흐 공화국에 배치될 정도로 아르메니아와 아르차흐는 한 나라이다. 1993년 당시에는 나고르노카라바흐를 지원하는 아르메니아와 나고르노카라바흐의 독립을 막으려는 아제르바이잔 사이의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으로 번졌고, 그 후에도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의 분쟁은 계속 일어났다. 결국 카라바흐의 아제르바이잔이 실효 지배 중인 지역에서 아르메니아의 공격으로 아제르바이잔의 [[탱크]]가 격파되는 사건이 벌어졌고, 이로 인해 아제르바이잔에는 국민적인 추모가 일어났으며, 아제르바이잔 정부가 아르메니아에 전쟁선포를 하면서 전쟁이 일어났다. 다만 아르메니아 측에서는 아제르바이잔이 먼저 아르차흐 공화국의 수도인 스테파나케르트(Ստեփանակերտ) / 한캔디(Xankəndi)를 공격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아르메니아는 [[쿠르드인]] 독립 세력인 YPG, PKK 일부를 아제르바이잔 쪽으로 이동시켜 같이 군사 훈련을 하면서 아제르바이잔과의 전투를 대비했다. 이들은 반 [[튀르키예]] 활동을 하다 보니 아르메니아와 우호적이기에 전투 경험도 치를 겸 아르메니아군과 같이 합동 훈련을 하며 전투에 대비하는 것이다. [[https://www.dailysabah.com/politics/war-on-terror/armenia-transfers-ypgpkk-terrorists-to-occupied-area-to-train-militias-against-azerbaijan|기사]]. [[레바논]]에 사는 아르메니아인들이 베이루트 폭발 사건 이후 아르차흐로 이주하기도 했다. [[https://web.archive.org/web/20200927170534/http://www.aztv.az/az/news/8824/ermenistan-livandan-ermeni-ailelerini-qanunsuz-sekilde-dagliq-qarabaga-kocurmek-isteyir-markserhmark|기사]]. 시리아계 아르메니아인까지 동원되었다고 전해진다. [[https://www.aa.com.tr/en/asia-pacific/azerbaijan-armenian-syrian-mercenaries-helping-armenia/1988447|기사]]. 이에 아제르바이잔은 튀르키예와 우호적인 [[시리아]]의 함자 사단을 바쿠로 동원했다. [[https://greekcitytimes.com/2020/09/25/reports-turkey-is-transferring-syrian-militants-to-azerbaijan-as-hostilities-against-armenia-increases/|기사]]. 아제르바이잔의 목표는 나고르노카라바흐의 험준한 지형 탓에 아제르바이잔 행정구역상의 퓌줄리구 및 재브라이을구만 점령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https://eurasianet.org/as-fighting-rages-what-is-azerbaijans-goal|기사]]. 아제르바이잔은 구 소련에서 독립한 국가 중 유일하게 [[시아파]] 이슬람이 국민의 다수 종교인 국가인데, [[이란]]은 아르메니아를 지원하고 있다. 이는 이란 서부에 많은 아제리인들이 있는데, 본국 아제르바이잔의 세력이 커질수록 분리 독립 움직임이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튀르키예가 같은 [[수니파]]인 쿠르드인을 핍박하는 것과 비슷한 양상. 이란이 아르메니아를 지원하기 위해서 무기와 물자를 운반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https://www.intellinews.com/iran-denies-allowing-passage-of-weapons-into-armenia-after-video-emerges-on-social-media-192945/|기사]]. 이란은 이 보도를 부인하였으나([[https://en.mfa.gov.ir/portal/NewsView/612094|기사]]), 아제르바이잔 측에서 이란이 아르메니아로 무기와 물자를 운반하는 영상을 공개하였고([[https://www.azernews.az/karabakh/169670.html|기사]]), 이란 측에서는 다시 아제르바이잔이 이란과 아르메니아와의 관계를 방해하기 위해 모함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https://www.iribnews.ir/fa/news/2841669/----------|페르시아어 기사]]. 워싱턴 포스트의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와 튀르키예의 용병 전쟁으로 변질되고 있다고 한다. [[https://www.washingtonpost.com/world/2020/09/30/armenians-azerbaijan-turkey-russia-clashes/|기사]]. 러시아는 용병이 있었는지에 대한 논란이 있었는데, 자유유럽방송에 따르면 친러 민병대로 알려진 '''바그너 부대'''의 참전이 사실로 확인되었다. 어느 편 휘하인지는 불명. [[https://www.svoboda.org/a/30868597.html|기사]]. 튀르키예군 고위 장교 150명이 아제르바이잔군을 지원하고 있다. [[https://armenpress.am/eng/news/1030164/|기사]]. [youtube(7_VXEhG6hmQ)] [[2020년]] [[2월]] 전쟁 전 [[미국]]의 러시아 외교 전문가인 셀레스트 월랜더(Celeste Ann Wallander)가 주최한 토론회에 [[니콜 파시냔]] 아르메니아 총리와 [[일함 알리예프]] 아제르바이잔 대통령이 참석하여 나고르노카라바흐 문제에 대해 토론하는 영상. 사실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은 2020년 7월 벌어진 군사충돌 이전에도 산발적으로 치고 받던 관계였고, 아제르바이잔은 이전부터 자국의 점령지를 되찾으려고 해왔다. [[4일 전쟁|2016년 4월에는 꽤 큰 규모의 전투]]가 일어나기도 했다. 이 전쟁이 어느날 갑자기 벌어진 게 아니라 [[6.25 전쟁]] 이전 남북한이 산발적으로 충돌하던 것과 똑같이 이미 [[휴전]] 성립 이후에도 산발적인 교전이 벌어지고, 있었고 이것이 전면적으로 확대된 것이다. 튀르키예의 명시적인 지원에다 당해 7월 양국간 국경충돌 때 수천 명의 바쿠 시민들이 카라바흐의 강제수복을 주장하는 시위에 영감을 받아 끝끝내 전면전을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무엇보다 아제르바이잔 민주공화국 시절에는 양국간에 공식적인 외교 관계가 잠깐 동안 있었으나 이 문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지금은 엄청난 원수지간 이상이다. 실제로 모든 아르메니아 국적자들 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에사는 아르메니아계 후손이거나 그들의 피가 섞인 경우에는 어떠한 이유로도 아르차흐를 제외한 아제르바이잔 전역에 입국할 수가 없으며[* 국가 기관의 허락 없이 몰래 들어가면 밀입국으로 규정되어 처벌된다.], 심지어 타 국가 출신인데도 본인의 [[성씨]]가 단지 아르메니아인과 유사하다는 이유만으로 비자 발급이 안 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거 같다. [[https://eurasianet.org/russia-complains-to-azerbaijan-about-discrimination-against-armenians/|기사]]. 분쟁 지역뿐만 아니라 공식적인 국경에서도 양국간 총격전이 간헐적으로 있어왔으며, 당연히 [[군사분계선]]처럼 엄격히 통제되어 막혀있다. 다만 에르도안이 이 전쟁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보기는 힘들지만, 그렇다고 에르도안이 이 사태와 무관하지 않다. 당연히 에르도안의 튀르키예가 아제르바이잔에 지원을 해주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에르도안의 입장에서도 [[미국]], [[러시아]]와의 관계를 말아 먹으면서 리더십에 타격을 받았기 때문에 만회해야 할 것도 있어서인데, 에르도안과 아제르바이잔이 [[프랑스]]의 개입까지는 상정 내에 두지 않은 듯하다. 원래 영토 분쟁의 특성상 국제사회의 중재를 통한 해결 시도는 더디었는데, 2009년 발표된 마드리드 원칙이라는 평화안이 실패함으로써 양측의 적대감이 심화되었고, 휴전은 사실상 물거품이 되었다. 아제르바이잔은 당초 아르메니아 및 아르차흐에게 점령당한, 나고르노카라바흐 자치주를 둘러싸고 있는 7개 [[구(행정구역)|구]](區) 가운데 캘배재르구(Kəlbəcər), 라츤구(Laçın)를 제외한 5개 구를 요구하였고, 만약 아르메니아가 나고르노카라바흐 변경에 위치한 [[퓌줄리구]](Füzuli), 아그담구(Ağdam), 재브라이을구(Cəbrayıl)의 2~3개 지역만 돌려주었더라면 종전 협정이 체결되어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되는 이러한 불상사가 생기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르메니아 입장에서 나고르노카라바흐는 아제르바이잔의 영향력을 막아주는 일종의 방파제 역할을 하는 곳으로, 이 중 하나라도 아제르바이잔에게 주었다간 아르메니아 본토가 아제르바이잔의 사정권에 놓이는 만큼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지역이다. [[퓌줄리구]](Füzuli), 아그담구(Ağdam), 재브라이을구(Cəbrayıl), 그리고 캘배재르는 '''[[산맥]] 고원 지형'''(죄다 해발 2,500~3,000m 정도 한다)으로 이곳이 [[아제르바이잔]]한테 넘어가면 '''[[아르차흐 공화국]] 전역 + [[아르메니아]] 본토가 그냥 아제르바이잔 [[포병]]한테 얻어맞는 곳'''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즉 [[삼팔선]]으로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나눴을 때 [[개성시]]가 둘로 분단되면서 시내는 대한민국 땅인데 산 지역이 [[북한]]에 넘어가며 [[6.25 전쟁]] 이전에도 개성 시내에 북한이 계속 포격을 퍼부었던 상황이 아르메니아한테 벌어진다는 것. 그래서 아르메니아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 부분은 양보 못한다. [[세르지 사르키샨]] 아르메니아 대통령 시절에 하던 영토 분쟁 협상에서도 아르메니아는 아르메니아 본토와 아르차흐를 잇는 접경구역을 양보한다고 했지 방어선이 될 아르차흐-아제르바이잔 접경지역을 넘겨준다고는 절대 하지 않았다. 또한 이 지역은 비록 아르메니아인이 주류이기는 했으나, [[아제르바이잔 SSR]]의 하위 자치주이기도 했기 때문에 아제르바이잔인도 살던 지역이었다. 특히 현재 아르차흐 공화국이 지배하는 영역은 약 1만 1천 km²인데 , 소련 치하 나고르노카라바흐 자치주의 영토는 4천 km²로 그 절반에 미치지 못하고, 나머지 지역은 소련 붕괴 이전에는 아제르바이잔인이 다수를 차지하는 지역이었다. 또한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 과정에서 양군은 서로의 민간인을 향해 [[제노사이드|학살]]을 저지른 바 있다. 특히 아르메니아군이 아제르바이잔 민간인을 대상으로 자행한 호잘르 학살(Xocalı soyqırımı / Խոջալուի արյունահեղություն)이 대표적이다. 아제르바이잔 측은 이번 전쟁에서도 "호잘르를 잊지 말자."라는 구호를 앞세웠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